서론: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는 삶
2022년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우크라이나 박물관 직원들은 미술품과 역사 유물들을 포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포탄이 떨어지는 위급한 상황 중에서도 매뉴얼에 따라서 엄격한 포장 방법과 보존 절차에 따라 비밀 장소까지 직접 운반을 했다고 합니다. 미술품 뿐만 아니라 곧 바스러질 것 같은 오래된 서적도 있었고, 해체하기가 어려운 조각 작품같은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문화재 보존 책임자의 감독 하에 철저하게 절차를 준행하면서 모든 임무를 잘 완수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끝나면 박물관에서 자국의 귀중한 미술품과 유물을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약 3,500년 전, 이스라엘의 광야에서는 이와 비슷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고핫 자손이라 불리는 한 가문이 이 세상 그 어떤 보물보다 귀중한 물건들을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주어진 지침은 우리의 상식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어떤 첨단 운송 수단도, 특별한 장비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들의 어깨로 성물을 메고 가야 했고, 심지어 그 성물을 직접 보거나 만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특별한 임무에 관한 하나님의 상세한 지침을 담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고대 이스라엘의 의식법에 불과해 보이는 이 말씀이 왜 오늘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이 말씀 속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귀중한 원리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현대인의 70% 이상이 "성공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원칙을 타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현대 사회는 효율성과 결과를 중시합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가 우리 시대의 모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원리로 작동합니다. 하나님은 방법과 과정을 중요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오늘 함께 나누는 이 말씀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중요하고 위험한 사명
고핫 자손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이었을까요? 본문 4절을 보면 "고핫 자손이 회막 안의 지성물에 대하여 할 일"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이동할 때 성막의 가장 거룩한 기구들을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법궤(증거궤), 진설병의 상, 등잔대, 분향단, 번제단 등을 책임졌습니다.
이 임무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성막의 기구들은 하나님의 속성과 그분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가장 신성한 물건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것들을 책임진다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엄청난 영광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 영광스러운 사명에 특별한 제한과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장 먼저 연령 제한이 있었습니다. 1-3절을 보면 "서른 살부터 쉰 살까지" 회막 안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은 20세 이상이었는데, 성막 봉사는 더 높은 연령 제한이 있었습니다. 이는 성막에서 섬기는 일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며, 단순한 육체적 힘뿐만 아니라 성숙한 신앙과 풍부한 경험, 인격과 지식까지 갖추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언약하셨던 내용들을 성취하기 위해 군대로 변화되는 시점이지만,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군대나, 군사력, 전략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근원적인 승리의 원천은 바로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전쟁 승패의 원인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을 다루는 일은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 제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15절과 20절에 나오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그들은 잠시라도 들어가서 성소를 보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고핫 자손들은 성물을 운반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지만, 그것들을 직접 보거나 만지면 죽임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엄중한 경고입니까!
왜 이렇게 엄격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분이시고, 그분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물건들은 함부로 다뤄질 수 없었습니다. 이는 고핫 자손들이 섬기는 대상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한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원리를 배웁니다.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더 영광스러운 위치에 있을수록, 더 큰 책임과 위험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입니다. 베드로전서 2:9에서는 모든 신자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특정 가문만이 성물을 다루는 특권이 있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그분을 섬기는 제사장적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이는 특권인 동시에 중대한 책임입니다.
또한 교회의 직분자들에게는 특별한 책임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3:1은 "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목회자나 장로, 집사와 같은 중요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자신을 높이거나 권위를 남용하지 않고, 오히려 더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게다가 우리 모두는 이제 "너희 몸은 성령의 전"(고전 6:19)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고핫 자손들이 성물을 다룰 때 거룩함을 유지해야 했듯이, 우리도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태복음 20:2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고핫 자손의 사명에 담긴 역설입니다. 가장 거룩한 물건을 다루는 영광스러운 위치에 있을수록, 더 큰 두려움과 겸손함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직분과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축복이자 동시에 책임입니다. 우리가 맡은 위치가 높을수록, 더 큰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생명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2. 성도는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우리는 민수기 4장의 상세한 내용을 살펴보면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핫 자손에게 직접 해당되는 지시는 사실 매우 간결합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간단하게 말해서 ‘메어서 운반하라, 성물을 만지지 말라, 만지면 죽는다(15절)’라는 핵심 명령뿐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대부분은 제사장들이 성물을 어떻게 포장하고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고핫 자손에게 주는 말씀 가운데 그들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제사장들의 임무까지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셨을까요?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먼저 4-14절에서 성물들을 어떻게 포장하는지 상세히 설명합니다. 가장 중요한 증거궤는 먼저 휘장으로 덮고, 그 위에 해달의 가죽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순청색 보자기를 덮어 삼중으로 포장했습니다(5-6절). 또한 진설병의 상(7-8절), 등잔대(9-10절), 분향단(11-12절), 번제단(13-14절)도 각각 구체적인 방법으로 포장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상세한 지시가 주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17-19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같이 한 번 읽어 보시지요. "17 여호와께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 너희는 고핫 족속의 지파를 레위인 중에서 끊어지게 하지 말지니 19 그들이 지성물에 접근할 때에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같이 하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들어가서 각 사람에게 그가 할 일과 그가 멜 것을 지휘하게 할지니라."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자세한 말씀은 생명과 직결된 것이었습니다. 고핫 자손이 성물을 잘못 다루어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렇게 상세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의 자세한 규례들, 특히 구약의 의식법들을 읽으면서 "이런 내용이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우리의 생명을 위한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고핫 자손은 자신들이 운반하는 물건이 단순한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성물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지성물의 포장 과정을 직접 볼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것들이 얼마나 거룩하고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성경의 상세한 내용, 특히 민수기와 같은 책에 나오는 규례들을 읽으면서 지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각종 지성물들을 포장하는 방법이 오늘 우리의 삶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의문을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말씀들은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고 생명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고핫 자손에게는 지성물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자세한 지시는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은혜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정보나 교훈을 넘어서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유지하는 양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할 때 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진리를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을 좌우하는 엄중한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단순히 좋은 도덕적 교훈이나 위로를 주는 책으로만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이상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능력이 있으며, 우리 삶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부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때로는 이해하기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후서 3:16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고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우리의 이해력이 부족할 뿐,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완전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22은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종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핫 자손들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은 죽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성경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의식법과 규례들도 결국은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신 일을 ‘대속’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대속’이 신약에서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이 아니라 구약의 제사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고, 구약의 시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없이 제사를 드리며 이 구속에 대한 내용을 몸소 익혔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레위기를 통해 제사법을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모든 말씀은 생명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등장하는 복음서만 복음이 아니고, 신구약 성경 모두가 우리에게 생명의 복음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때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는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이 말씀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보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가르치시려는가?"라고 묻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민수기와 같은 구약의 규례들 속에서도 신선한 통찰과 생명의 말씀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복음에 귀 기울이고 전적으로 순종합시다.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3.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영광스러운 부르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고난의 길이며, 때로는 눈물로 얼룩진 길이기도 합니다. 이런 어려운 길을 어떻게 하면 영광스럽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민수기 4장은 이에 대한 중요한 원리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일은 각자의 역할과 질서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본문 5절을 보면 성소의 기구는 오직 아론과 그의 아들들, 즉 제사장들만이 만지고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성소 기구를 포장한 후에야 고핫 자손들이 그것을 메고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각자의 역할과 질서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고핫 자손들중 누구라도 ‘왜 제사장들만 성물을 만지느냐, 우리도 하겠다’ 혹은 ‘빨리 이동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으니 우리가 돕겠다’ 이렇게 아무리 좋은 마음이라도 만약 만지거나 보는 순간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역할과 질서를 존중하며 함께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일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6절에서 보듯이, 증거궤를 옮길 때는 지성소 휘장으로 덮고 그 위에 "테하쉬" 가죽으로 덮었습니다. 이 "테하쉬"(히브리어 תחש)는 우리말 성경에서 "해달"로 번역되었지만, 정확히 어떤 동물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홍해에 서식하는 ‘듀공’이나 돌고래와 같은 해양 포유류를 가리킨다고 보며, 이 가죽은 방수 기능이 뛰어나고 내구성이 강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이러한 특별한 가죽을 어떻게 구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아마도 이집트를 떠날 때 이집트인들로부터 받은 귀중품 중에 이 가죽이 포함되어 있었거나(출 12:35-36), 홍해를 건너는 과정에서 해양 동물을 포획했거나, 또는 다른 민족들과의 교역을 통해 얻었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이 특별한 가죽은 성막의 거룩한 기구들을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거룩한 것은 세상의 부정한 것들로부터 지켜져야 합니다. 그 가죽이 성막 기구를 비와 먼지, 외부 오염물질로부터 보호했듯이, 우리 영혼과 교회도 세상의 부정한 영향력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이단사설이나 세속적인 가치관이나 가르침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영적으로 깨어 지켜야 합니다.
성막 기구들이 테하쉬 가죽으로 보호받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보호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9은 우리를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요한일서 2:15-17에서는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15절에서 고핫 자손은 성소와 성소에서 사용되는 기구들을 '메고' 옮겨야 했습니다. 이 기구들은 대부분 금, 은, 놋과 같은 금속으로 만들어져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수레에 실어서 끌고 가는 것이 훨씬 편했을 텐데, 하나님은 반드시 어깨에 메고 옮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때로 우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사고방식에 빠지기 쉽습니다. 더 효율적이고, 더 빠르고, 더 현대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는 방법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반영합니다. 성막 기구를 어깨에 메는 행위는 단순한 운반 방식이 아니라 거룩한 예배의 일부였으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존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역대상 13장과 15장에서 우리는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 원리를 배우는 모습을 봅니다. 처음에 다윗은 법궤를 수레에 실어 운반하려 했고, 그 결과 웃사가 법궤를 붙잡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다윗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게 했고, 성공적으로 법궤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사울 왕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제사를 드려 결국 왕권을 잃었습니다(삼상 13장). 이 사건들은 모두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우리의 편의나 효율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을 따라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이 원리는 현대 교회에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종종 효율성, 성장, 성공이라는 세상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유혹에 직면합니다. "더 많은 사람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고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보다 우선시될 때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결과보다 과정에서의 순종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공이 아니라 신실함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규모가 아니라 질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이루었는지를 보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0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넷째, 하나님의 일은 지속적인 가르침과 경계가 필요합니다. 17-19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고핫 자손이 레위인 중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할 일과 멜 것을 '지휘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수시로 가르치고 경고해서 그들이 고의로든 실수로든 함부로 지성물을 보거나 만져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일은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고핫 자손들은 30세부터 50세까지 20년간 성막 봉사를 감당했습니다. 이는 일생의 가장 활력있는 시기를 하나님의 일에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일시적인 감정이나 열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라고 세상에서 부름 받았습니다. 이 일은 고난과 어려움이 따르지만, 동시에 가장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면 말씀과 기도로 훈련된 성숙한 신앙과 인격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해야 합니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우리의 편의보다 우선시하며, 끝까지 충성된 청지기로 살아갑시다. 그럴 때 주님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21)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방식대로 거룩함을 지키는 삶
오늘 우리는 민수기 4장 1-20절을 통해 고핫 자손들의 특별한 사명과 그들이 지켜야 했던 원칙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함께 나눴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특권이자 중대한 책임이라는 점입니다. 고핫 자손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가장 거룩한 성물을 운반하는 것이었지만, 그만큼 엄중한 경고와 함께 주어졌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그 중요성과 책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리더십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더 큰 책임감과 겸손함으로 맡겨진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고핫 자손들에게 주신 상세한 지침은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성경의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나 종교적 지침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때로는 이해하기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성경의 부분도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성경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써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고핫 자손들은 성물을 운반할 때 테하쉬 가죽으로 덮어 보호하고, 반드시 어깨에 메고 옮겨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방법과 과정을 중요시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효율성과 결과를 우선시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의 편의나 선호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모든 원리들은 결국 한 가지 핵심 진리로 수렴됩니다. 바로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며, 그분을 섬기는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성막의 기구들이 세상의 오염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했듯이, 우리의 삶과 교회도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구별되고 보호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16절은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고핫 자손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현대적 적용점을 제시합니다:
1. 하나님의 일에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그 책임의 무게를 인식하고 충분한 준비와 성숙함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영적 생명을 유지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방법을 존중하고, 결과보다 과정에서의 순종을 더 중요시해야 합니다.
4.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5.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고핫 자손들은 20년 동안 그들의 직무를 감당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민수기 16장에서 고핫 자손인 고라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반역을 일으켰을 때 멸망했지만, 민수기 26:11에는 "그러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고핫 가족의 지파를 레위인 중에서 끊어지게 하지 말라"고 하신 명령이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고핫 자손들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우리의 목적을 이루고, 다음 세대에게도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2의 말씀처럼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 모두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삶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 마침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주님의 칭찬을 듣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거룩함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 영광스러운 여정에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생명의 길이며,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이루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살 때, 우리는 참된 평안과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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